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,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.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무덤방을 만들고,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무덤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.
창녕지석묘는 원래 7기의 지석묘가 북두칠성 형으로 배열되어 일명 칠성바위라고 불리고 있었으나, 1912년 도로공사 때 일본인이 일부 파괴하여 공사에 사용해 현재 1기만 남게 되었다. 상석 아래 5개의 지석이 놓여 있으며, 지하는 석실로 되어 있다. 남방식 지석묘 중 호남지방의 지석묘가 군집을 이루는 데 반해, 영남지역의 지석묘는 열을 지우고 있는데 이 창녕지석묘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.
1962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재 남아있는 1기를 제외한 나머지 6기의 하부구조를 조사하였으며, 지석묘들의 축조 시기는 기원전 5세기 정도로 추정된다. 구릉의 정상...